[피린]-허진희는-서면의-봄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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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고태은 인터뷰이 : 마법소녀노동조합 부산지부 피린 탄핵 광장에서 내가 새로이 알게 된 부산 동지 중 한 사람은 피린님이었다. 피린님은 항상 큰 깃대를 들고 투쟁현장에 나타나 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만나는 곳은 대부분 서울과 전국 집중 일정이었다. 하지만 부산 사람이었던 피린님이 부산의 투쟁사업장인 서면에서는 또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나타났을지 궁금했다. 일정이 어려워 서면 인터뷰로 갈음한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오래 전이어서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진희 동지가 윤석열 탄핵 부산시민대회 에서 발언을 했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무대에서 발언을 하신 것을 듣고 아,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수요집회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제 캘린더를 확인해보니까 2025년 2월 19일 수요일에 ‘서면시장 투쟁!’이라고 처음 적혀 있는 걸 보니까 아마도 2월 19일에 서면시장 수요집회에 처음 참여했던 것 같아요. 진희 동지의 첫인상은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꼈었어요. 만나면 만날수록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말했을 때 짜먹는 감기약을 챙겨주시기도 했어요. 그걸 먹고 하루가 지나니까 거짓말처럼 감기기운이 쏙 들어갔어요. 투쟁할 때 늘 상비하시면서 가지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 그만큼 투쟁 연차와 내공이 쌓인 흔적이라고 생각하니까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늘 약을 지니고 있어야할 정도로 아픈 시간과 세월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니까 슬픈 마음도 들어요. 늘 아프지 않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두 분 모두.  태경 동지는 첫인상이 락스타 같았어요. 저는 남성패싱 동지들의
[타잔]-괜찮다는-말에-마음이-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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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고태은 인터뷰이 : 성미산마을 타잔 싸람에서 노동절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연대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타잔님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서면시장 후원 티셔츠를 입고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는 타잔님의 모습. 그 모습에 담긴 연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타잔님에게 다시 한 번 요청한 인터뷰는 김태경, 허진희 그리고 서면시장지회 투쟁에 대한 연대의 마음으로 수락되었다. 나는 그 또한 참, 타잔님의 연대답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만나러 갔다.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한번 물어봤어요. 동지 우리 언제 처음 만났어, 하고. 근데 그 동지들도 나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기억이 안난대요. 원래는 제가 (투쟁하는 현장에서) 사람들 아는 척을 잘 안해요. 그냥 온전히 응원을 받았으면 좋겠어서 사람들이랑 잘 만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서면시장 동지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던 것은) 허진희 동지가 사측놈한테 폭행당했던 시기부터였던 거 같아요. 젊은 여성 동지가 남성에게 폭행했다는 것 자체에 너무 놀랐어요. 허진희 동지를 만나보면 너무 자그마한 여성인데… 그렇게 심하게 폭행했다는 것에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폭행 자체도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그런 심한 폭행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너무 착하고 여리고, 항상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말이 너무 아프고 걱정되었어요” 촬영.전병철 2. 왜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를 하나? “저는 대기업 투쟁보다는 소수이고 가장 힘든 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서면시장이 제가 연대하는 곳에서는 가장 소수일 것 같은데… 다른 곳은 아무리 힘들어도 여러 명이잖아요
[정성훈]-따뜻한-마음,-뜨거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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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박수연 인터뷰이 :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해고자 정성훈 산별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해고 시기도 다르지만, 울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 해고자들의 집회에는 늘 서면시장 동지들이 있고, 부산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집회에는 늘 이수기업 동지들이 있다. 수요일과 목요일, 정기 집회 요일도 나란히. 내가 그들을 만나온 이래 언제나 함께. 이 다정한 사람들을 보면 ‘동지적 관계’란 말이 참 잘 어울린다 싶다. 이수기업 해고자 중 정성훈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상팀’이라서 (물론 1인 팀이다) 늘 사진과 영상 기록을 맡아 남기는데, 그러느라 정작 본인이 찍힌 사진이 많지 않아서 사진을 고르는데 애를 좀 먹었다는 사족을 달아둔다.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예, 나죠. 왜냐하면 저희가 이수에서 해고되고 나서… 저희가 현대자동차 노조 지부 사무실에서 농성을 했었습니다.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했는데, 하다 보니까 ‘안에서만 있으면은 갇혀가지고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 그래서 안에 농성하시는 분은 몇 분 남고, 나머지는 나가서 사외 투쟁을 해야겠다, 해서 나왔는데. 그러고 나서 첫 연대를 간 곳이, 다른 분은 모르겠는데, 저는 거기를 (서면시장을) 처음 갔거든요. 처음 간 곳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 사진 스튜디오R 장연우 2. 왜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를 하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처음 연대를 가본 곳이기도 하고, 저희 안미숙 대표님께서 가서 발언도 해서 이수기업 해고 상황도 알리고. 저희는 그때 투쟁이라는 걸 잘 몰랐기 때문에, 연대 오신 분들이 어떻게 하는지, 이런 것들도 좀 잘 보고, 배운다는 개념으
[정남준]-불량-연대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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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희정 인터뷰이 : 비주류사진관 정남준 수요일마다 서면시장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 그 자리에 늘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 비주류 사진관, 정남준 작가. 카메라를 들고 선다.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을 만나야 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정작 정남준 작가는 “저는 불량 연대자인데요” 한다. ‘진짜’ 불량 연대자인 나는 할 말이 없다.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2021년에 저는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하는 중이어서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집회 때 연대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서면시장지회 허진희 동지를 처음 보게 된 거였어요. 서면시장이 제 일터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서면시장지회가 노동조합 만들고, 그해 4월 14일인가 첫 집회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날부터 집회 현장 기록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김지원 촬영 2. 왜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를 하나? 영세 사업장이고, 싸우는 사람을 두 사람뿐이고, 한 명은 해고된 상황이고, 파업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고.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기록을 하게 된 거죠. 작은 투쟁을 찾는 건 제가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싸람’분들도 공감하시겠지만, 저는 대공장 노조가 파업한다거나 집회를 할 때는 되도록 안 가거든요. 기록을 위한 기록, 기록물을 소유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연대하기 위한 기록’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고, 이 중에서도 더 작고 소외된 싸움에 연대하는 기록을 하려는 거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사회 이면에 감춰진 부분을 위주로 기록하는 게 제 사진의 모토라. 신라대 투쟁도 그렇고, 예전에 생탁, 택시 노동자들의 시청 광고탑 농성 때도 그랬고.  신라
[윤태현]-작지만-거대한-투쟁을-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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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김경민 인터뷰이 : 윤태현 현대건설기계 하청 서진ENG 해고자   세상의 거대한 벽에 맞서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투쟁이 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여전히 차가운 거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연대했던 윤태현 동지의 인터뷰다.    단 두 명. 숫자로만 보면 참 작고 외로운 지회로 보일 수도 있다. 큰 조직의 거대한 함성도, 수많은 인파의 북적임도 없지만 어떤 거대한 투쟁보다 깊고 강렬하게 진행하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등 뒤를 지키며 버텨온 수많은 계절 속에서 단순히 '버틴다'는 것의 의미를 넘어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두 조합원을 만나면 모진 바람을 맞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 그리고 신기하게도 타 사업장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사자의 싸움만으로도 숨이 가쁠 텐데도, 연대하러 온 이들에게 먼저 따스한 마음을 건네는 그 깊은 마음이 감사했다. 서면시장의 투쟁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터와 권리를 위해 귀중한 몸부림을 치는 거라는 의미에서 중요한 투쟁이다.   두 명의 조합원이 지키고 있는 그 작은 천막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닿고, 더 많은 연대의 발길이 머무는 단단한 다리가 되어가고 있다.   머지않은 날, 그들이 길 위의 천막이 아닌, 원래 있어야 할 일터로 돌아가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과 인사 나누는 그 당연하고도 간절한 풍경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 ​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저희가 서진ENG 해고투쟁을 하면서 우리 투쟁을 알리려고 고철 TV라는 유튜브를 개설했고, 우리 투쟁을 알리면서 연대 투쟁도 알릴 겸 해서 유튜브
[소희]-편드는-마음을-글에-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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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신정임 인터뷰이 : 싸람 소희 성주에 살지만 전국을 누빈다. 오늘은 서울, 내일은 평택, 모레는 부산…. ‘노동자가 담대해지는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기 위해서 기록한다’는 소희에게 글은 연대의 다른 표현이다. 그가 조합원 둘인 투쟁 현장을 놓칠 리 없었다. 그렇게 60년 전통의 부산 서면시장번영회에서 견디고 견뎌온 두 사람의 투쟁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의 연대는 계속된다. ​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싸람 기록 현장으로 서면시장지회를 택했던 이유도 궁금하다. 처음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요. 부산에 취업한 후배를 만나러 갈 일이 있었어요.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서면시장 동지들의 투쟁 소식을 봐온 터라 부산 가는 김에 후배랑 같이 갔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렸는데 마침 수요일이었지요. 당시엔 시장을 둘러쌀 정도로 대오가 많았어요. 신라대 노동자들이 투쟁 중이어서 부산일반노조 사람들이 많았죠. 집회 끝나고 만장과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서 행진하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면시장이 그 일대에서 규모가 있고 화려한 곳인데 그런 곳에서 집회를 그렇게 크게 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싸람 기록 현장으로 서면시장지회를 택한 건 작은 사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싸람을 처음 만들 때 취지가 ‘작은 사업장의 투쟁을 기록하자’는 것이었거든요. 이곳이야말로 싸람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했죠. 사실 처음엔 이곳이 5인 미만 사업장인 줄 알았어요.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예외 조항도 많고 노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분들이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사저]-우와,-말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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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진다 인터뷰이 : 사저 투쟁문화제 없는 날 들른 부산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인천에서 왔고, 투쟁에 대해 잘 모른다는 나에게 서면시장번영회지회의 투쟁을 열띤 목소리로 설명하던 김태경, 허진희 동지가 갑자기 “오늘도 사저 동지 오나?”, “오늘 신발 사고, 들를 수도 있다고 했다.”를 시작으로 사저 동지 얘기를 한참이나 했다. 이 근처에 사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에 자주 오는 말벌 동지라며 기쁜 얼굴로 말하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저 동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니 언젠지 알겠다며 웃었다. 요즘 일을 시작해 예전만큼 가지 못한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서면시장번영회지회 동지들을 얘기하는 사저 동지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마치 사저 동지 얘기를 하던 두 동지의 목소리처럼.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 기억한다. 2월에 연대투쟁호를 만들고 내려온 그 주의 수요일이니까, 2월 12일쯤이었다. 그때 서울에서만 들고 다니던 깃발을 처음으로 부산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교회에서 오신 동지들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계신 동지들이 "우와, 말벌이래.", "말벌이 뭐야?", "활동명이 말벌인 거예요?"하고 물어보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에 오가는, 흔히 이야기하는 2030 청년이 나뿐이라서 거기 계시던 동지들이 내 나이를 듣고 마치 딸자식 보듯이 흐뭇하게 보셨던 게 기억이 난다. 본인 제공 2. 왜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를 하나? 일단,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가까웠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많은 도시에서 살아보진 않았지만, 나에게 가장 의미가 큰 도시가 부산이었기에, 부산에서 이런 부조리한 일들이 벌
[박미희]-남겨진-투쟁에-연대하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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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살미 인터뷰이 : 기아자동차판매 해고자 박미희 “지금 서면 시장은 가장 절실한 게 연대입니다.” 분노에 찬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노조로부터의 지원이 끊어진 상황이라 서면시장의 투쟁은 더 심한 난관에 봉착했고, 뭣보다 동지라 하지 않았던가. ​ “민주노총이 이렇게 열악한 투쟁 사업장에 발길을 끊어버리는 것은 양육자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조의 본질을 망각한 짓이죠. 제가 바라는 거는, 비록 이런 상황일지라도 보란 듯이 시민 사회, 각 개인들이라도 더 단결해서 연대를 이어나가는 거예요.” 투쟁이 고통의 시간을 버티는 일이라는 건 견뎌본 사람이라서 더 절실하게 아는 걸지. 혼자서 10년 넘게 싸웠던 박미희 씨는 기아자동차 판매 내부고발자로 부당해고를 당했었다. 둘만 되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던 그는 23년 10월이 되어서야 지난하던 투쟁을 끝낼 수 있었다. 그는 곧장 부산 집으로 내려와 자당을 모시다, 다음해 7월에 모친을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다. 사별의 마음이 조금 달래진 초가을이 되어서야 서면시장 투쟁에 처음으로 연대할 수 있었다고, 고마운 동지들에게 빚을 갚는 듯한 심정이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출처. 허진희 페이스북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제가 (상경 투쟁으로)서울에 있을 때 세종 호텔 집회에서 허진희 동지를 알게 됐어요. 그때는 제투쟁이 급급해서 그냥 인사만 한 정도여서, 투쟁 내용도 잘 몰랐어요. 세종호텔 집회 연대를 많이는 못 갔지만, 틈틈이 가면 허진희 동지가 서면시장 투쟁을 한다고 하면서 (보였어요). 유난히 웃는 모습이 환해서 허진희 동지의 그, 웃으면서 인사하는 얼굴이 저한
[박경화-밴드]-나의-노래는-그들이-변해가는-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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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소희 인터뷰이 : 박경화 밴드 ​ 서면시장에서 투쟁문화제 할 때면 빠짐없이 노래 공연하는 사람이 있다. 박경화 밴드이다. 김태경 동지, 허진희 동지가 투쟁하는 5년 동안, 그들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고 지켜준 사람들.   ​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2021년 1월인가 2월인가?)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연대하면서 처음 만났어요. 신라대 본관 로비를 점거 농성하고 있을 때였어요. 투쟁문화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뒷풀이를 했었거든요. 뒷풀이에서 자연스레 인사하고 서면시장번영회 내부 비리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투쟁하면 노래로 연대하겠다 했었어요. 당시 허진희 동지는 여리고 눈물도 많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추며 억눌려 살았다고 느꼈었는데 투쟁하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당당한 허진희로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아요. 김태경 동지는 낯가림이 심해 눈인사 정도만 했었거든요. 지금처럼 수다쟁이일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생기면서 점점 마음도 열리고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무슨 수문 열리듯 수다를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 같아요. 총량의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하나 봐요. 하하하 출처 - 비주류사진관 (허진희, 김태경 두 사람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이야기 해달라.) 허진희 동지 처음 만났을 때는 말수도 적고 자신감도 없어 보였어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때 번영회 회장이나 그쪽 사람들이 실제로 가방 검사하고 때리고, 모욕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 저항하지도, 따지지도 못해 당하고만 살았다 하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투쟁하는 과정에서 변화한거라 생각해요. 어느 순간부터 허진희 동
[남행희]-아껴주고-싶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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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정윤영 인터뷰이 : 남행희 ​ 거의 평생을 근처에서 살았으니 서면시장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서면시장에서 장을 본다. 오래 특수교육실무원으로 일했고, 2년 전 퇴직한 뒤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노조활동을 하는 옆지기와 함께 서면시장지회가 생길 때부터 연대해 왔다. 옆지기는 암투병중이고, 자신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어 예전처럼 서면시장에 상주하다시피 연대하지는 못하지만 서면시장 두 사람을 늘 생각한다.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 벌써 5, 6년 됐나요?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김태경 지회장은 입도 짧고 낯을 가려요. 그런데 한번 얘기를 하면 또 끝이 없어요. 외골수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 입맛이 까탈스러워요. 뭘 맛있게 먹는 걸 못 봤어요. 저는 집밥을 해서 큰누나처럼 챙겨주고 싶었어요. 허진희 동지는 정말 뭐든 열심히 해요. 저는 싸움에 직접 관여하거나 그렇다기보다는 두 사람을 동생처럼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사진: 비주류사진관 정남준 ​ ​ 2. 왜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를 하나? 시장번영회와 싸운다는 게 힘든 것 같아요. 일반노조와도 갈등이 깊어져서 쉽지 않을 것 같고요.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어서 더 힘든 싸움이 됐고요. 저는 두 사람이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몸과 마음 건강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어려운 상황을 잘 봉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지회장이 남 얘기를 잘 듣지 않아요.(웃음) 상황이 궁지에 몰리다보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싸움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담보가 되어야하는데 주위에서 아무리 치료받으라고 해도
[남영란]-배추-세는-것-말고는-포기를-모르는-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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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소희 인터뷰이: 노동해방 마중 남영란 서면시장번영회 지회는 매일 점심 시간에 시장번영회 회장 가게 앞에서 선전전을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집회를 하고 투쟁문화제를 연다. 틈틈이 서면시장을 찾아와 허진희 동지와 현수막을 나란히 쥐고 수줍게 서 있는 남영란 동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자주 만났다. 서면시장번영회 지회 ‘연대자’라고 했을 때 그의 연대하는 마음을 들어보고 싶었다. 출처 - 노동해방 마중 페이스북 1. 서면시장번영회지회 동지들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나? ​ 처음 옆지기한테 서면시장에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누가 노조에 가입했을까?’, ‘노조가 뭘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시장번영회 사무실 직원들과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을 알고는 ‘아.. 맞네! 거기도 그런 노동자들이 있었네’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가보지는 못하고 옆지기한테 ‘어렵게 노조를 만들었는데 노조 만들고 얼마 안돼 주차 관리하는 조합원들이 다 탈퇴하고 사무실 직원 몇 분만 남아 어렵게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하고 이야기만 들었어요. 그때 김태경, 허진희 두 분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무실 직원 한 두 분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신라대에서 청소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을 때였어요. 서면시장번영회 지회가 신라대로 연대오셔서 저도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신라대에서 그 분들을 처음 만나고 나서 신라대 청소노동자들과 다 같이 서면시장을 찾아갔어요. 거기서 다같이 집회하고 사무실에 올라갔었던 기억이 나요.  2.  서면시장 투쟁에 연대하는 이유는? (지난번 투쟁문화제에 제가 갔었는데요. 남영란 동지는 안 오셨